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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칼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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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설교를 듣는데 한 사람은 완전히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은 전혀 변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전혀 변하지 않는 근본적인 이유는 귀 기울여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영적으로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주를 두려워하고 그분의 종의 목소리에 순종하며 빛이 없이 어둠 속에 다니느냐? 그는 주의 이름을 신뢰하고 자기 하나님을 의지할지니라.”(사 50:10)

주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듣지만 여전히 어둠 속을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두려워하기는 하지만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님을 신뢰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여러분의 삶에 적용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주님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의 삶에 적용하지 않고 핑계를 대든지 변명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교회에 빠짐없이나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지만 여전히 어둠 속을 걷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교회에 와서 성경공부에 참여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빛 가운데 걸을 수 있습니다.
이제 기도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지만 응답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왜 우리는 응답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기도에 대해서도 세상 종교가 가르치는 것과 성경이 가르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침례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세상 종교가 가르치는 침례와 성경이 가르치는 침례는 완전히 다릅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가르치는 구원과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은 완전히 다릅니다. 세상은 형식과 예식이 구원과 관련 있다고 가르치지만성경은 마음과 믿음이 구원과 관련 있다고 가르칩니다. 여기에는 엄청난 차이
가 있습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기도와 이 세상 종교가 말하는 기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신약 성경에 기록된 기도들에 대해 자세하게 살펴볼 것입니다. 특히 이 시간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저에게복을주시고복권에당첨되게해주시고고급승용차를 주시고 다시는 아프지 않게 해 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이것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다음 과에서 왜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지에 대해 살펴볼 것입니다. 이기적인 마음과 동기로 하는 기도는 결코 응답 받지 못합니다. 자아중심 적인 기도는 잘못된 것입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 95% 이상의 그리스도인들의 기도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 시간에 이러한 기도의 문제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과에서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응답 받지 못하는 기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의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나 신뢰도 없이 그저 어떤 말만을 늘어놓기 때문입니다.
다음 과에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확실한 가운데 남겨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성경에 명확하게 기록해 두셨습니다. 우리는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요한복음14:13을보겠습니다.“ 너희가무엇을구하든지내가그것을 행하리니”저는 무엇인가를 빼고 읽었습니다. 제가 읽지 않은 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가 읽지 않은 부분이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그것을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요 14:13-14) 이제 성경에서 기도에 대한 말씀들을 찾아본 뒤에 다시 이 구절로 돌아와서 이번 과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주님께서는“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그것을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별로 어렵지 않은 몇 가지 간단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답하기 위해 대단한 성경 지식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잘 들어보시고 답해 보세요. 예수님께서 죄를 지을 때도 있을까요? 쉬운 질문이지요? 답은 간단합니다. 예수님은 죄를 짓지 않으십니다. 다시 비슷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실 때가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이 백지수표를 받은 것과 같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떤 것을 구해도 기도의 끝에“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습니다.”라는 말만 붙이면 응답 받게 된다는 게 결코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쭉 얘기한 다음에 예수님의 이름을 들먹이고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13을 인용하기만 하면 어떤 것을 구하는 기도든 주님께서 응답해 주셔야 할 의무가 있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르게 기도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알아야 합니다.
욥은 마귀와 영적 전쟁을 치렀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마귀가 완전히 승리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욥은 건강과 재산과 가족 등 목숨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왜 자신에게 그러한 일이 생겼는지 알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왜 자신에게 고난이 닥쳤는지 알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자신이 왜 불행한 일을 당하게 되었는지 설명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빛을 구했지만 얻지 못했습니다.
욥기9장을보겠습니다.“ 내가눈녹은물로내몸을씻고그어느때보다도 내 손을 깨끗이 할지라도 주께서 나를 도랑에 빠지게 하시리니 내 옷마저도 나를 몹시 싫어하리이다.”(욥 9:30-31) 욥은 오늘날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종교와 자기의(self righteousness)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욥은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깨끗이 씻
고 최선을 다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주님께서는 그것을 몹시 싫어하시며 도랑에 던져버리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 앞에서는 결코 자신의 노력으로 스스로 깨끗하게 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32절을 보겠습니다. “그분은 나처럼 사람이 아니시므로 내가 그분께 대답할 수도 없으며 우리가 함께 재판을 받으러 갈 수도 없고”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보고 감동을 받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을 보고 선행을 하는 것을 보면 감동이 될 때가 있습니다. 훌륭한 사람을 보면 감동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거룩하신 하나님도 그러실까요?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고 감동하실까요? 인간의 어떤 행위도 하나님을 감동시키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아니십니다.
계속해서33절을보겠습니다.“ 우리사이에는우리둘위에손을얹을중 재인도 없도다.”욥이 말하는 것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저 위하늘에 계십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 땅 위에 있습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시원하게 대화를 나눌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인간과 시원하게 대화하실 수 없습니다. 욥은 자신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사람들이 제대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서로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중재자를 원했습니다. 욥이 원한 중재자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는 존재여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그 중재자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어야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중재자는 인간도 이해할 수 있는 존재여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그 중재자는 인간과 같은 분이어야 했습니다. 욥은 하나님과 인간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중재자가 나타나서 하늘과 땅 사이를 이어주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대변해 주고 서로 대화를 나누고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동물과 온전한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동물과 가까이 지낸다 해도 완전한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저 제한적이고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할 뿐입니다. 저는 개와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저는 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도 저와 대화를 나눌 수 없습니다. 개도 인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개와 인간은 서로의 존재는 인식할 수 있지만 완전한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도 서로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지만 완전한 의사소통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전서 3:16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논쟁의 여지가 없이 하나님의 성품의 신비는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성령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믿기시고 영광 속으로 올려져서 영접을 받으셨느니라.”
이 구절이 말씀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욥과 같은 인간을 살펴보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보시니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인간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볼 수 없었던 하나님을 누구나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거하시고 사람들이 먹는 것처럼 먹으시고 사람들이 마시는 것처럼 마시시고 사람들이 자는 것처럼 주무시고 사람들이 주리는 것처럼 주리시고 사람들이 매 맞는 것처럼 매 맞으시고 사람들이 욕먹는 것처럼 모독당하시고 사람들이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친구를 사귀시고 사람들이 죽는 것처럼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 때문에 인간과 교제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이셨기때문에 인간은 그분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리아는 단순히 인간이었습니다. 그녀는 인류에 속한 인간이었습니다.
마리아는 한 번도 하나님이었던 적이 없으며 지금도 하나님이 아니며 앞으로도 결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같은 인간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하나님의 입장을 이해할 수는 없었습니다. 마리아는 인간의 손을 잡을 수는 있었지만 하나님의 손을 잡을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같은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디모데전서2장을보겠습니다.“ 한하나님이계시고하나님과사람들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딤전 2:5) 성경에 의하면 한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그리고 한 중재자가 계십니다. 이 중재자는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십니다. 이 중재자는 바로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것을 자세히 보십시오. 성경은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잘 들어보세요.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의 태 안에 인간의 육체를 하나 준비하셨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5에서는“…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나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거룩한것”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눅 1:35). 마리아의 태 속에서 하나님이 생성되고있었던 게 아닙니다. 마리아의 태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어가 거하실 육체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육체 안에 들어와서 사셨던 것입니다.
그 몸 안에서 하나님은 시장에 가셨고, 그 몸 안에서 하나님은 목수일을 하셨으며, 그 몸 안에서 하나님은 뱃머리에 기대어 주무셨고, 그 몸 안에서 하나님은 최후의 만찬을 하셨으며, 그 몸 안에서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삼일 밤과 삼일 낮이 지나고 나서 죽었던 그 몸은 다시 살아났습니다. 40일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 몸을 입으신 채로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아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그 몸을 입고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계십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아계신 분은 분명히 아들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십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인간의 몸을 입고오셨으며 여전히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신 인간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육체로 부활하신 것이 아니라 단지 영으로만 부활하셨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시다는 놀라운 진리를 몽땅 제거해 버린 것입니다.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을 이어주는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과거에만 중보자이신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도 중보자이십니다. 과거에만 인간의 몸을 입고 계셨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 중보 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디모데전서 2:5을 보겠습니다.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인간과 하나님을 연결해 주는 유일한 중보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몇 명의 사람을 하나님과 연결해 주실 수 있으실까요? 예수님께서는 몇 명의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게 하실 수 있으실까요?
계속해서6절을보겠습니다.“ 그분께서정하신때에증언을받기위해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느니라.”유일한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몇 명이나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지 아십니까? 모든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남자나 여자나 소년이나 소녀라 할지라도, 오늘 이곳에 모인 그 누구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자신을 만든 창조자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기 위해 신학교를 나와야 하거나 수도원에 들어가야 하거나 신비한 체험을 해야 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든지 원하면 하나님과개인적인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피로 자신의 죄를 씻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지 거의 이천 년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우리를 위해 저택을 준비하고 계실 것입니다. 또 믿는 자들에게 상급을 주기 위해 모든 것을 녹화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영광 중에 계신 우리의 구원자께서 하시는 핵심적인 일은 따로 있습니다.
히브리서 7장을 보겠습니다. “율법은 아무것도 완전하게 하지 못하였으나 주께서 더 나은 소망을 가져오심은 완전하게 하였으므로 우리가 이 소망을 힘입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느니라. 또한 그분께서는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 제사장들은 맹세 없이 되었으나 이분은 자기에게 말씀하신 분을 힘입어 맹세로 되셨느니라. 곧, 주께서 맹세하셨고 또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계통에 따른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그런 것으로 말미암아 예수님께서는 더 나은 상속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그들이 참으로 다수의 제사장이었던 것은 죽음으로 인해 그들이 항상 있지 못하였기 때문이로되 이 사람은 항상 계시므로 변할 수 없는 제사장 직분을 소유하시느니라.”(히 7:19-24)
율법의 체계 아래에서는 제사장이 있었습니다. 제사장은 일시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일을 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제물을 가져오면 제사장은 그것을 받아서 제물을 가져온 사람을 대신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일년에 단 한 번만 지성소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지성소 밖에 있어야 했습니다.
종교적이고 독실하고 신실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율법 체계 아래서는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교제를 나눌 방법이 없었습니다. 왜 대제사장이 계속 바뀌었는지 아십니까? 그들은 수명에 한계가 있는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습니다. 대제사장이 죽으면 사람들은 그를 땅에 묻었고 땅에 묻힌 그 대제사장의 몸은 계속 땅 속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경은 지난 이천 년 동안 신약교회의 대제사장은 단 한 분밖에 없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수많은 대제사장이 있었지만 왜 교회에는 이천 년 동안 단 한 분의 대제사장만 있었는지 아십니까? 왜냐하면 우리의 대제사장은 죽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영원히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또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25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해 중보하심을 보건대 그분은 또한 자기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오는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느니라.”예수님께서는 살아계십니다. 영원토록 살아계십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그분 앞에 나아오는 사람을 위해 중보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냥을 좋아하는 사람은 사냥하기 위해 산다고 얘기합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낚시를 하기 위해 산다고 합니다. 돈을 벌기 위해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늘나라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인터뷰하면서 예수님께 질문을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위해 사십니까?”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나는 나를 믿는 사람들을 중보하기 위해 사노라.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사노라.”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 요청을 합니다. 기도 요청을 받은 사람이 요청한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도 있겠지만 기도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고 특히 기도 요청을 받았을 때는 더욱 그래야 하지만 때로는 기도 요청을 받았다는 사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제가 저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한 한모든 사람이 잊어버려도 예수님께서는 결코 저를 위해 기도하시는 것을 잊어버린 적이 없으십니다. 저를 위해 아무도 기도해 주지 않아도 예수님께서는 기도해주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구원받고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면 여러분을 위해 아무도 기도하지 않아도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바빠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주지 못할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다른 어떤 일보다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살아계셔서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일 때 성령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들어와 거하십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아버지로 모시게 됩니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신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을 위해 중보 해 주시게 됩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그 사람 안에 들어와 계시면서 그 사람을 위해 중보 해 주십니다.
로마서8장을보겠습니다.“ 이와같이성령께서도우리의연약함을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롬 8:26)
우리 주위에는 암에 걸린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이 낫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우리가 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합니까? 그 사람은 우리의 친구이고 형제 자매이기 때문에 그가 고통 받는 것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가 암에 걸렸다면 저도 낫기를 원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다음 주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무엇을 위해,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상황을 정확하게 아십니다.
친구를 교회로 인도하면서 제발 목사님이 복음을 전하는 설교를 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음에도 목사님은 전혀 다른 주제를 설교할 때도 있습니다. 정직하게 얘기하자면 목사는 여러분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모릅니다. 또 여러분을 위한 최상의 것이 무엇인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목사는 모든 상황을 다 알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 누구도 모든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성령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알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때문이니라.”(롬 8:26-27)
아버지 하나님의 오른편에는 저를 위한 중보자가 계십니다. 제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도 저를 도와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제가 개인기도를 하면서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제가 기도를 할 때 성령님께서는 저의 마음을 살피셔서 저의 동기가 무엇인지 보시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마음과 동기로 기도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하면 성령님께서는 저를 도와서 그 기도를 하나님께로 전해 드립니다. 그러나 제가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는 기도를 하면 성령님께서는 그 기도를 하나님께 전달해 드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을 구하며 기도하면 성령님께서는 그 기도를 아들 하나님께로 가져 가십니다.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국회에서는 위원회가 열립니다. 어떤 안건이 헌법에 위배되면 그 안건은 폐기됩니다. 헌법과 일치하지 않는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헌법과 일치하지 않는 안건은 위원회에서 걸러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왜 수많은 기도가 응답 받지 못하는지 아십니까? 기도가 아예 하나님께 전달되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아십니까?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살피십니다. 만일 잘못된 것을 구하거나 잘못된 동기로 구하면 성령님께서는 그 기도를 아들 하나님께 전달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잘못된 것을 잘못된 동기로 구하면 성령님께서 이렇게생각하실것입니다.“ 지금구하고있는것은우리의헌법인성경에위배되는 것이다.”그래서 성령님께서는 그 기도를 하늘에 계신 아들 하나님께 전달하지 않고 폐기시켜 버리십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구하는 것이 성경에 위배되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이라면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아들 하나님께 전달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7:20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 사람들만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말로 인하여 나를 믿을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오니”같은 장에 있는 9절도 보겠습니다. “내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나이다. 내가 세상을 위해 기도하지 아니하고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해 기도하오니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이것은 대단한 특권 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러한 특권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은 특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도를 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 전달해 드립니다.
여러분이 지금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기록된 책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책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기억나십니까? 여러분은 요한이나 누가나 마가가 기록한 것을 읽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면 그 기도를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아들 하나님께 제시하시고 아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그 기도대로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여러분은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이해해야만합니다. 다시요한복음14:13로돌아가겠습니다.“ 너희가내이름 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그것을 행하리니 이것은 아버지께서 아들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만일 여러분이 구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제시할 수 없는 것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성령님께로부터 그것을 받지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구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제시할 수 있는 것이라면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그 간구를 성령님께서 취하셔서 여러분의 중재자이신 아들 하나님께 제시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기도 목록을 가지고 아버지께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이 기도를 들어주셨으면 합니다.”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이렇게말씀하실것입니다.“ 나의사랑하는아들이여무슨일인가? 그대는 항상 나를 기쁘게 하는 일만을 하지 않았는가? 무엇이든 말해 보시오.”
성경은“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에서 오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거니와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
(약 1:17)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때 성령님께서는 우리 마음에서 우리의 기도를 취하셔서 아들 하나님께로 가져가실 것이며 아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으로 그 기도를 아버지 하나님께 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가 성령님을 통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올라갔듯이 하나님 의 선물이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갖기 원하는 쇼핑 목록을 예수 님의 이름으로 청구한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구원자의 마음 과 일치하게 되고 우리의 뜻과 우리의 구원자의 뜻이 일치하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합니다. 아들 하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는 기도가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James W. Knox’s Sermons on Prayer- (도서출판 킹제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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